어릴 적엔 제가 뭐든 좀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 상위 수준이랄까. 20대 후반에 아마데우스란 영화를 보는데 살리에르에 격하게 공감하고 심지어 모차르트가 밉기까지 하는 나를 보며 느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많이요. 그게 이 정도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살림살이도 그 중 하나였다고 봅니다. ‘못할 거 뭐 있어? 까짓 거 남들 다 하는 건데’ 하면서요. 육아, 청소, 빨래, 음식 장만에 직장생활도 했지만 늘 자격지심을 느끼는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음식장만이었습니다. 여성으로 살면서 살림살이 중 특히 음식솜씨는 여성 권력 중 주요한 위치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농촌이라는 가부장적이고 집단적인 곳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도 농촌생활을 하는 지라, 나름 열심히 발끝이라도 좇아가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30년을 살고는 이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음식을 하며 별 다른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노동인 것이지요.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일거리라고 할까요? 그러니 제가 생각하기에 농촌여성으로서의 저의 자질은 빵점입니다. 권력은 차지하고서라도 말입니다. 아, 그래도 자칭 포장계의 요정이니 30점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자위합니다.
반면 옆집의 옥분언니는 음식 분야의 아마데우스입니다. 늘 머리에 악상이 떠오르는 모차르트처럼 언니는 주변의 풀들을 보며 밥상을 채울 생각으로 기뻐합니다. 특유의 깔깔깔 웃는 웃음도 이제 생각해보니 모차르트와 비슷합니다.
논밭상점 식구들은 종종 옥분언니네서 밥을 먹습니다. 밥상엔 주변의 온갖 풀들이 올라옵니다. 미나리, 씀바귀, 머위, 민들레, 당귀, (계란프라이처럼 생긴 꽃을 피워 계란꽃으로도 불리는) 풍년초 등. 어느 날은 된장국에, 어느 날은 부침개에, 또 어느 날은 샐러드로. 나물반찬은 손이 많이 갑니다.
옥분언니는 직접 들로 산으로 다니며 나물을 뜯으니 자연산인 만큼 더 잘 다듬어야 합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드려 밥상을 차리곤,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고 또 깔깔깔 좋아합니다. 감사히 맛있게 잘 먹는 점심 한 끼가 논밭상점의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PS: 하지만 옥분언니가 음식으로의 여성권력은 가졌지만, 실제적인 ‘삶의 권력’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저보다 상층부인 것만은 확실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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